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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공부/일상, 생각

'in' 에 대하여

by 파프 2024. 8. 20.

내가 뭘하든 지켜봐 줄 때




환자에게 가장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들 중 하나가,
격려의 말이었다.

아픈 게 미안하다, 증상이 특이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면 유독 마음이 쓰였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의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이게 만들어주고 싶었고
좋은 기운만 주고 싶었었다.

왜냐면 내가 바로 Negative 끝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감정의 자동주행이 그렇게 되었다.
그게 얼마나 괴로운지 알기에.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그러다 보니
cheer up 말고
you can make it 말고
나는 너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어. 존중해.
라는 표현을 익혔다.

I believe in you.
I believe in your ability.

'in'이라는 전치사가 나에겐 포인트였다
in이 주는 내면의 힘이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우리나라는 밖에서 안으로 시선이 향하지만
안에서 밖으로 보는 시선에 더 익숙한 사람들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어.. insideout 도 약간 이런 느낌인가.. 안의 시선에서 바깥상황을 보는..)

--

드라마를 보다가 엄마로 나온 인물이
딸에게 모든 좋은 걸 다 해주고 싶어서
어미새처럼 이것저것 다 물어다 주고 그런 캐릭터였다.

내 말만 들으면 넌 행복할 거란 말을 듣고 자란
40대의 딸은 커피도 하나 주문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어버렸다.
왜냐면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근데 이게 비단 드라마에서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 또한 비슷한 말을 듣고 자랐고
엄마 말을 들었어야지~ 더 나은 선택을 했을 텐데
라는 말을 아직 종종 듣는다. 30살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잘하는 것들을 배우는 전략을 택했다.
나에게 엄마는 나의 선택을 대신해 주는 게 아니라,
엄마가 이미 나보다 앞서 인생을 살아오면서
쌓아 올린 훌륭한 것들을 나에게 알려주는 거라고.. 그게 운동이던, 요리던, 나는 엄마의 지혜를 더 늦기 전에 배우고 싶다.라고.)

물리적으로 엄마와 거리가 있는 동시에
모든 인생의 선택과 책임을 내가 지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겁도 났지만, 사실 틀리고 맞고는 없네. 싶었다.
그냥 후회할 짓만 안 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자기 확신, 자기 효능감이 이런 건가? 싶었고

더 큰 건 뭐냐면.

내가 자유로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게 자유구나 싶었다.
내 삶에서 내가 조종사가 되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내 안에 소리를 듣고 행동할 때
이런 느낌이 드는구나.
누구보다 미러링을 잘하는 나는
남의 인생을 살고 있었구나 싶었다.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들을 딱히 비교대상으로 두지 않다 보니 압박감에서 자유로워졌고
내가 내 인생을 향유하는 게 먼저였다.

시선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졌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 없음.
이라고 생각하니 또 그 안에서 자유가 느껴졌다.

(그래도 잊지 말 것, 자유에는 늘 책임이 따른다.)

우리가 바라는 부모님의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
내 안에서 자유를 느끼게 해 주고
그것에 따른 책임감을 알려주고
그리고 무엇을 하든 전적으로 믿어주는 것 말이다.

자식을 사랑해서라는 마음으로
더 나은 선택지를 대신 골라주고
더 좋은 것을 물어다 줄 수 있지만,

자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 주는 것.
그것이 본인들의 시대와 다른 사고방식 일지라도
본인들이 봤을 땐 잘 안될 것 같을지라도
실패했다면 정말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그 안에서 배우는 것도 자식의 몫임을 알려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부모의 자세가 아닐까.

내가 만난 어른 중에
이런 모습을 보이신 분이 사실 드물다.

대부분 자식을 위해 자신이 어떤 희생을 했는지 말하기 바빴다.

하지만, 그분은 '믿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셨다.
그 마음속 깊은 곳까지는 내가 전부 알 순 없지만 말이다.

음 분명 내가 보기엔 억누르는 느낌이었는데
사실 너무 낯설어서 이게 무슨 느낌이지? 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혼란스러웠었다.

근데 저 드라마의 상황과
대사를 듣고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며 깨달았다.

그 모습이 진짜 내가 뭘 하든 잘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
그저 믿어주는 모습이라는 것을.

쉽지 않은 것임을 안다.

삼촌이 말했던
'딱 끊어'라는 말도 냉정하게 들렸지만,
아,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거였구나 싶었다.

드라마의 대사처럼

" 다 자식 잘 되라는 건데 그걸 모르고!"

"알아요. 딸들도 엄마가 나 사랑해서 그런 거라는 거.
저도 엄마가 하라는 데로 하는 게 편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엄마가 제일 좋을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내가 뭘 하든 잘할 거라고 믿고 지켜봐 줄 때요. "


누구를 사랑하든, 누구를 걱정하든,
그게 내 자식이든, 내 친구든, 내 미래의 배우자든.
이 마음가짐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 사람들의 'in'을 말이다!
그걸 존중해 주고 그 in을 먼저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들을
덧씌우려 하지 않는 마음도

내가 봤던, 그분의 믿어주는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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